미친 사랑의 노래

미친 사랑의 노래

들어와 0 328


“오늘 수업은 고려가요입니다. 







교과서 49쪽을 펴세요. 거기 고려가요에 관한 설명이 있죠? 







고려가요의 정의를 먼저 보세요. 고려시대의 음악은 궁중음악으로 아악 그리고 당악이 있었고 민간에서 불리던 음악으로 속악이 있었는데. 고려가요는 이 속악의 노래에 쓰이던 가사들이어요. 







그래서 고려속요라고도 불리죠. 고려시대에는 우리 글자가 없어서 입에서 입으로 노래만 전해질뿐. 기록되지 않다가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후에야 비로소 글로 정리가 되었죠. 







이 고려가요는 국문학의 갈래 가운데 제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분야입니다. 







조선시대의 집현전 학사들, 그 사람들은 남녀간의 자연스러운 정서를 남녀상열지사로 사리부제라고 몰아붙여서 대부분의 고려가요들을 기록하지 않고 자기들의 맘에 맞는 것만을 골라내서 기록했죠. 







야! 거기 수업 안 듣고 뭐해?” 







학생들을 한 번 쏘아 본 다음 현주는 계속 고려가요에 대한 내용 설명을 해 나간다. 







지금은 3교시. 문과 3반 고전시간. 현주는 다시 한 번 자신을 둘러싼 눈동자의 감옥을 느낀다. 







항상 여기 윗 교사의 가운데 교실인 2학년 3반에서 문학 수업을 할 때마다 뒤쪽에 앉아 말없이 쏘아보는 눈동자. 감탄과 찬사와 욕망이 섞인 시선. 







열기에 휩싸인 눈초리. 그 시선의 감옥 안에 혼자 있을 때 현주는 외롭고도 황홀했다. 







작년에 이 학교로 부임해 왔고 작년에는 1학년. 올해에는 2학년 문과 반을 맡아서 가르쳤다. 재영이는 문과생들 중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 놈은 머리가 좋고 잘생긴 편이었고 집안이 좋아서 이웃 여학교 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 애는 이 도시의 시장님의 외아들이었다. 아마도 시장님은 연임에 성공할 것이다. 첫째 부인과 사별한 뒤 오랫동안 혼자 살다가 다시 결혼해서 얻은 귀한 아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의 사생활이나 휴가일정 혹은 가족관계들은 비밀에 붙여지는 일 없이 공개되기 마련이라 이재영의 집안이나 취미등도 알려고만 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는 주말에는 여학생 팬들을 몰고 다녔다. 그는 농구를 좋아했고 겨울에 열리는 농구대잔치에는 항상 친구들과 함께 나타나 자기가 좋아하는 팀을 응원했다. 재영의 시선을 몇 번이나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 보았지만, 현주 역시 여학생 시절에 정치경제 선생님을, 친구들에게 들킬 만큼 열정적으로 짝사랑한 경험이 있어서 그 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그냥 무시하기도 힘들었다. 늘 그렇듯이 일시적인 감정 일테지... 늘 그렇듯이 그냥 지나 갈 거야. 교사와 학생사이는 학생이 아니라 교사 쪽에서 학생의 순수성을 지켜주고 바른 길로 인도해 주어야 하는 것. 현주는 재영의 감정에 대하여 일상적인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재영이 속해있는 반의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몸이 더워지고 땀이 나는 것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서 그 반 수업은 일부러 엄격하게 진행했다. 























재영은 문학수업시간이 될 때마다 곤혹스러움을 느낀다. 







교사가 교사로 보이지 않는다. 여자로 보이는 것이다. 황현주 선생님이 아니고 나의 현주인 것이 재영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은 생각 속에서 그럴 뿐이어서 재영은 항상 그냥 현주를 바라볼 뿐이었다. 문학시간마다 자신의 키가 큰 것이 원망스럽다. 좀 더 앞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들으면 그 목소리를 잘 들을 뿐만 아니라 숨쉬는 것도 들릴 텐데. 







현주를 향한 자신의 열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재영은 알지 못했고 현주도 몰랐다. 







다만 이번 여름방학 때 그 열망이 행동으로 옮겨질 것이라고, 아마도 그것은 파괴적인 방향으로 진행될 것 같다고, 그 방법이 아니고는 도저히 저 사람을 실제적으로 좋아할 길을 찾지 못할 듯 하다고 여길 뿐 ... 







재영의 상상 속에서 현주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재영은 늘 학교에서 그녀를 보고, 꿈에서 갖가지 모습으로 나타난 그녀를 안았고, 그녀를 위해 노래하고 농구를 하고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그녀를 위해 짧은 노래를 지어서 그것을 오카리나로 부르기도 했다. 







상상 속에서의 현주는 늘 재영의 연인이었으나 실제의 현주는 재영이 생각하기엔 극단적 보수주의자인데다가 원리원칙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그녀와 난 언제건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넘어갈 수 없을 것이다. 도덕선생도 아니면서 수업시간마다 바른 삶 







, 이타적인 삶을 강조하는 걸 보면 아마도 저 사람은 엄격한 종교적 규율 속에서 성장했을 것이다. 무릎 선 위로 넘어가는 스커트를 입은 적이 한 번도 없는 걸 보면, 현주는 밤에도 속옷을 단정히 입고 파자마를 입고 양치를 하고 기도를 끝내고 나서야 침대에 들 것이었다. 아마도 현주는 처녀일 것이다... 재영은 숨 막히는 기대와 답답함을 동시에 느꼈다. 























“본문으로 넘어 가죠. 52페이지 만전춘을 펴세요.. 12번 김성주. 만전춘 읽어 보세요.” 















만전춘[滿殿春] 















지은이 미상 















어름 우희 댓닙자리 보와 님과 나와 어러 주글만뎡 







어름 우희 댓닙 자리 보와 님과 나와 어러 주글만뎡 







정[情]둔 이 밤 더듸 새오시라 더듸 새오시라. 















경경[耿耿] 고침상[孤枕上]에 어느  미 오리오. 







서창[西窓]을 여러?榻?도화[桃花]ㅣ 발[發]?宕灌?br /> 



도화  시름 업서 소춘풍[笑春風]?鐸〈?소춘풍[笑春風]?鐸〈? 















넉시라도 님을 ?阪?녀닛 경[景] 너기다니 







넉시라도 님을 ?阪?녀닛 경[景] 너기다니 







벼기더시니 뉘러시니잇가 뉘러시니잇가. 















올하 올하 아련 비올하 







여흘란 어듸 두고 소해 자라 온다 







소콧 얼면 여흘도 됴?榻?여흘도 됴?榻? 















남산[南山]애 자리 보와 옥산[玉山]을 벼여 누어 







금수산[錦繡山] 니블 안해 사향[麝香]각시를 아나 누어 







남산[南山]애 자리 보와 옥산[玉山]을 벼여 누어 







금수산[錦繡山] 니블 안해 사향[麝香]각시를 아나 누어 







약[藥]든 가슴을 맛초압사이다 맛초압사이다. 















아소 님하 원대평생[遠代平生]애 여힐   모  새. 







<악장가사> 































“성주 잘 읽었어요.. 해석 들어갑니다. 첫째 줄. 얼음 위에 댓잎으로 자리를 







마련하여 님과 나 얼어 죽을지 언정 정 둔 이 밤 더디 새오시라. 더디 새오시라. 







........... 







참 좋은 노래라고 생각 안하나요?“ 























현주는 책에서 눈을 들어 학생들을 훑어 보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재영의 눈동자를 







마주 보고는 흠칫하여 급히 눈을 다시 책으로 옮긴다. 그 눈을 마주 볼 수가 없다. 







직선으로 쏘아오는 화살 같았다. 시선에 색을 입힌다면 노랑색과 빨강색과 검정색이 







섞여 있는 굵은 직선이었다. 가슴이 막막해져 왔다. 그 시선의 의미를 모르지 않는다. 







그녀가 여고생 때 아버지가 집을 짓는 건설현장에 갔다가 받았던 노동자의 욕정어린 







더운 아니 뜨거운 시선. 







마음껏 눈으로 안고 키스하고 옷을 벗기고 목덜미에 귓볼에 입 맞추는 고리쇠. 







눈에 안 보이는 쇠사슬. 







그대는 내 눈의 빛이고 심장의 고동이라고 말하는 눈빛. 







아이들은 그녀의 설명을 교과서에 적어나가다가 그녀의 말이 끊기자 다음 말을 







기다리며 책을 보고 있다가 조금 시간이 가자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시계를 보니 조금 뒤면 끝종이다. 현주는 책을 덮었다. 















윗교사에서 아랫교사로 내려오는 길은 구름다리로 이어진다. 







현주가 출석부와 책을 들고 내려오는데 체육을 담당하는 기 종수 선생이 옆에 다가와 







현주에게 말을 건넌다. 







“황선생은 언제 봐도 우아해.. 어쩜 그렇게 한결 같습니까?” 







“아이. 별말씀을 ... 진짜 우아한 사람을 한 번도 못 봐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내가 아무한테나 이런 말 안하고 사는 사람인데. 황선생은 대학으로 가야 할 사람이 고등학교로 잘 못 온 것 같단 말입니다. 대학원 수업은 잘 받고 있죠?” 







“네...” 







“열심히 공부해서 학위 따서 대학으로 가세요. 아마 여기 오래 있으면 다른 선생님들과 







학생들한테 전염 되서 그냥 보통 사람이 되어 버릴 거에요. 알았죠?” 







“흠. 명심하겠습니다.” 







“내일 모레면 여름 방학인데 이번에도 절에 들어가십니까?” 







“네. 그럴 것 같아요. 다음 학기에 논문 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역시 공부하기엔 







절집만한 곳이 없어요. 시원하고 조용하구요.” 







“아. 그럼 또 방학 끝나면 백인종이 되서 오겠군요. 바닷가에도 한 번은 갔다가 오시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공부만 하고 삽니까?” 







“미안해요. 사람이 못 생겨서 취미가 그것뿐이라 그래요.” 







“미안하긴요. 아무튼 농담도 못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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